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작위 요구자/아시아/인도 (문단 편집) ==== 하이데라바드 니잠 ==== ||<-2><#ffffff> [[https://ko.wikipedia.org/wiki/%ED%95%98%EC%9D%B4%EB%8D%B0%EB%9D%BC%EB%B0%94%EB%93%9C%EA%B5%AD#/media/File:Hyderabad_Coat_of_Arms.jpg|하이데라바드 왕국 국장]] || || 관련 칭호 || [[하이데라바드]] 니잠[* [[하이데라바드]]의 군주를 가리키는 명칭이다.][br]아사프 자[* '아사프 자 ○세'하는 식으로 계승되었다. [[태국]] 국왕의 칭호가 '라마 ○세'인 것과 같다.] || || 작위 요구자 || 미르 피라사트 알리 칸 || || 전임자 || 미르 오스만 알리 칸 || || 계승 실패 원인 || [[인도 자치령|1948년 왕국 멸망]] || 1724년 이래로 [[영국]]의 형식적인 식민지 등을 거쳐서 독립 왕국으로 남아있던 [[하이데라바드]]는 [[힌두교]]의 세가 절대적인 남인도에서 [[이슬람|이슬람교]]를 국교로 하는 나라였고, 그래서 1947년에 [[인도]]가 독립하자[* 다만, 이때는 아직 [[인도 자치령]]이라는 이름의 [[영연방 왕국]]이었다.], 힌두교도가 많은 인도에 합류하길 거부하고 이슬람교가 국교인 [[파키스탄]]으로의 귀속을 선언했다. 그러나 파키스탄 측은 자국의 본토에서 너무 멀다는 이유로 하이데라바드 왕국의 귀속을 거부했고[* 당시에 [[동파키스탄]]이라는 이름으로 가지고 있던 [[방글라데시]]의 훗날 일어난 독립운동도 지리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진 관계로 막지 못했다. 만일 [[하이데라바드]]를 받아들였으면, 이곳이 제2의 방글라데시가 되어 된통 피바다가 났을 것이다.], [[하이데라바드]]의 주민들은 왕실의 생각과는 달리 [[인도]]에 합병되길 희망하여[* 국교는 [[이슬람교]]였지만, 정작 무슬림은 한줌도 되지 않았고, 주민들의 절대 다수가 [[힌두교|힌두교도]]였기 때문이다.] 상황은 점점 엉망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니잠인 미르 오스만 알리 칸[* 왕호는 아사프 자 7세다.]이 이 상황을 타개하고자 하이데라바드의 독립을 선포했으나, 곧바로 쳐들어 온 [[인도군]]의 압도적인 화력을 이기지 못해 금방 패망했고, 왕실은 [[사우디아라비아]]로 추방당했다. 현재 옛 하이데라바드 왕국의 영토는 언어권에 따라, [[안드라프라데시]] 주와 [[텔랑가나]] 주 등으로 분할되어 왕실 부활의 여지가 없어져버렸다. 멸망 당시 미르 오스만 알리 칸이 [[영국]]의 [[런던]]에 있는 [[파키스탄]] 고등판무관 계좌에 100만 파운드를 잠시 맡겼는데, 나중에 돌려달라고 하자 파키스탄 정부가 돌려줄 수 없다고 하여 소송전이 벌어졌다. 파키스탄 정부가 외교관 계좌라는 이유로 면책특권을 주장하여 소송이 멈췄다가 2013년부터 재개됐는데, 2019년 10월 3일에 오스만의 후손들이 승소하여 그동안의 이자까지 3500만 파운드를 돌려받게 되었다. 파키스탄 정부의 항소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며, 승소 시 돈을 나눠받기로 합의한 [[인도]] 정부는 판결을 환영했다. [[https://news.v.daum.net/v/20191003125109803?d=y|기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